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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의 이방인

    지난 10월에 우리 교회 부흥사경회 강사로 오신 배굉호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남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전 11시에 비행기를 탔고 퀸스타운까지는 1시간 45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그러나 퀸스타운 지역에 구름이 너무 두텁게 깔려 있어서 도저히 착륙할 수가 없다는 기장의 방송이 있은 후 비행기는 항로를 크라이스트처치로 돌렸고 거기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퀸스타운으로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차창으로 바라보며 버스에서 흔들리다 지친 몸으로 내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자그만치 8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왔고 오클랜드 공항을 떠난 지는 12시간이 되었다. 10월 말의 퀸스타운 밤은 바람이 몰아치면서 몹시 추웠다. 아마 오클랜드에서는 아무리 겨울이라도 그렇게 추운 날씨는 없을 듯했다. 배목사님은 서둘러서 가방 안에 있는 목도리를 찾아서 두르셨고 나는 후드를 뒤집어썼지만 여전히 뺨은 얼얼했다. 문득 이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오후 1시경에 이곳에 내렸어야 했고 지금 이 시간쯤이면 따뜻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인생에는 이렇게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있는 법이어서 우리는 몸을 있는 대로 움츠리며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퀸스타운 공항에 내린 것이다.

    같이 버스에서 내린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그들의 실루엣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우리 모두는 택시가 줄줄이 들어와서 우리 모두를 하나 둘씩 실어가주기를 바랬지만 춥고 쓸쓸한 퀸스타운 공항에는 택시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니 간혹 택시들이 오기는 했지만 기다리는 사람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이고 보니 택시만 나타나면 사람들이 몰려가는 통에 택시 잡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동안 간혹 개인차가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우리 모두는 몹시 부러운 눈으로 그 차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건 우리같은 이방인을 태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나 연고자를 맞이하러 온 차들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내가 내 집이 아닌 곳,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곳, 타향(他鄕)에 와 있다는 느낌이 절절하게 들었다. 자기 집에 돌아왔거나 아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고 남들이 다 잠을 잘 시간에 연락을 해도 누군가가 와서 데리고 가는데 우리같이 아무 데도 연락할 곳이 없는 사람은 그 추운 밤에 오로지 택시가 오기만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공항에서 추위와 동동 구르며 택시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동안 천국의 이방인이라는 여섯 글자가 내 가슴에 선명히 떠올랐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여행을 마치고 천국에 갔는데 지금처럼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맞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머리끝이 쭈뼛 섰다. 예전에 들은 어떤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선교사가 오지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아내도 잃은 뒤 상심하여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그 배에는 대통령이 외교사절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배가 부두에 닿자 수많은 사람들이 팡파레를 울리면서 대통령의 귀국을 환영했다. 선교사는 무척 낙심이 되었다. 자신은 아무도 마중을 나와주지 않았고 게다가 아내까지 선교지에서 잃었기 때문에 자신의 신세가 더욱 초라하게 여겨졌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부드럽게 들리는 듯했다. “얘야, 대통령은 자기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환영을 받는 것인데 너는 아직 너의 본향에 돌아오지 않았잖니.”

    우리는 언젠가는 이 세상 집을 버리고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 한다. 만약 그때도 오늘처럼 아무도 나를 마중나오지 않고 춥고 캄캄한 어둠만이 나를 둘러싼다면 어떻게 할까. 천국에 자신의 집이 있는 사람은 누군가가 와서 반갑게 맞이하며 데리고 가는데 나는 연락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때 나는 언제까지 어둠속에 서서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온갖 문제가 실타래같이 엉겨있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쩌면 인생은 아주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국의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아서 천국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일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마치 언제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구실을 찾고있는 것만 같다. 더구나 공부를 잘 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예뻐야 하고 예의발라야 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면 사랑받기란 얼마나 어려운 숙제일까.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할 때 그들이 내게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는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또한 가장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한다. 가족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처럼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찾는 것외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이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의 ‘인생수업’ 중에서)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천국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으로만이 준비할 수 있다.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너희들이 있을 곳이 많이 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12월이다. 올해의 끝을 맞이하듯이 언젠가 우리 인생에도 마지막이 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천국에서 눈을 뜰 것이다. 그때 과연 천국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줄 누군가가 있을까. 그때 천국의 이방인이 되면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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