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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진실

    어릴 때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자신의 가정을 이루면 보란듯이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누구를 만났느냐 누구와 점심을 먹었느냐 등등 시시콜콜한 모든 일에 의심을 하는 바람에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그의 직업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물류를 운송하는 화물트럭 운전수였기 때문에 며칠 만에 한 번씩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이것이 그의 아내의 의심을 더욱 부추겼다. 하는 수없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 안에서만 운전을 하는 것으로 직장을 바꾸었고 이것이 그의 아내의 의심을 수그러들게 하기를 기대했지만 그의 아내는 여전히 그를 의심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아예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했지만 그것조차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남편을 심문했던 것이다.
    “건널목에서 당신을 쳐다보고 지나가던 그 여자 누구예요?”
    “신호등 옆의 나무 그늘에서 당신을 쳐다보고 있던 그 여자 누구예요? 당신하고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있으니까 당신이 그냥 지나간 것 아니예요? 바른 대로 대요.”

    인간에게 있어 진실은 무엇일까. 왜 인간은 상대방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자신이 일단 맞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상대방이 애원하고 눈물로 매달려도 그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 것일까. 왜 인간은 스스로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었다는 엄청난 왜곡을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일까.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 때문에 자신이 무너지고 상대방을 무너지게 하면서도 왜 끝까지 자신의 잘못된 진실에 매달리는 것일까.
    인간의 진실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남편과 함께 신혼살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미혼여성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한다고 그랬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일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부엌살림은 배우지도 못한 채 결혼을 했다. 그러다보니 퇴근시간만 되면 저녁 반찬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제목을 치면 준비물과 조리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일 친정 어머니가 반찬을 가지고 드나들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식사준비는 항상 커다란 숙제였다. 그러던 어느날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어찌나 맛이 있는지 내가 생각해도 대견했다. 오늘은 된장찌개만 해도 밥 두 그릇은 너끈히 뚝딱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남편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다. 린나이 가스불을 제일 약하게 줄여놓고 된장 뚝배기를 올려놓은 채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서 남편을 기다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면 남편이 얼마나 기뻐할까. 그러면 나는 남편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와서 이 맛있는 된장찌개를 자랑하리라.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그런데 분명히 올 시간이 되었는데 그날따라 남편은 오지 않았다. 그때가 겨울이었고 해도 이미 넘어간 터라 얼마 서있지 않았는데도 발도 시리고 뺨도 시려웠다. 핸드폰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집에는 전화도 없던 시절이어서 막연히 기다리기만 할 뿐 연락을 취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가서 아랫목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문득 지금 남편이 오면 내가 참 억울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남편은 지금까지 내가 추운데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라줄 것이 아닌가. 나는 따뜻한 윗옷을 걸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제 곧 올거야. 어쩌면 지금 저 모퉁이를 돌아오는지 몰라. 그러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된장이 다 졸아들까봐 할 수 없이 가스불을 끄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대문 소리를 딸랑거리며 남편이 들어설 것만 같아서 다시 나가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밤은 더욱 깊어졌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으려니 지나가는 강아지가 다 쳐다보았다. 강아지 보기에도 내 신세가 참 처량해 보였나보다. 그 순간 긴 그림자 하나가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무슨 생각을 그리도 깊이 하는지 땅만 쳐다보면서 걸어오다가 대문밖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당신 이 추운데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인간의 진실은 일방적일 때가 많다. 인간은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의 형편과 처지를 모른다. 남편이 왜 늦게 오는지 남편에게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나는 최선을 다해 찌개를 끓였고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대문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진실은 순수하고 눈물겨운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왜 자신의 시간에 모든 것이 딱딱 맞추어지지 않는지 서운해한다. 인간의 진실이란 그토록 일방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배웠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객관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예전에는 모든 판단의 주체가 자신이었다면 이제 자신의 판단이 다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붙들고 있거나 매달리고 있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숙이 아닐까. 예전에는 서로의 다른 점에 대하여 다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성숙이 아닐까.

    인간의 진실은 불완전하고 일방적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진리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치 않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진실은 영원한 진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와 죽음 너머의 저 세상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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