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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다가 모를 일

    오십대(代) 인생

    나는 인생 학교의 오학년 이반 학생이다. 만 오십 이세가 된 것이다. 내 마음 속에 50이란 숫자는 때로는 멀리 도망치고 싶고 때로는 어서 도달하고 싶은 애증(愛憎)의 대상이었다. 물론 10대 시절에는 50이 되기 싫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나는 복잡한 도시에 살면서도 복잡한 일상을 무던히도 싫어했다. 특히 올라타는 순간 누구든지 모든 인격이 제거된 짐짝이 되고마는 만원버스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항상 새벽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는데 새벽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특히 내 짐작으로 오십이 넘은 아주머니들의 고단한 표정과 지루한 옷차림은 풀을 빳빳이 먹인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고 있던 나로서는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마 그들은 새벽 시장에 야채를 팔러가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노동을 제공하러 가는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몸 속속들이 배여있는 일상의 찌든 피로와 버스가 흔들리는 대로 부스스한 머리카락 밑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며 자고 있는 얼굴을 대할 때면 나는 오십 대가 되기 전에 이 세상을 깨끗이 하직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근시와 원시에 대해 배울 때 나는 왜 나이가 들면 원시(遠視)가 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문득 원시(遠視)는 하나님께서 이제 세상일에 그만 몰두하고 저 멀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보내는 사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시는 가까운 데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고 먼 데 있는 것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나는 어서 나이가 들어서 원시(遠視)가 되고 싶었고 가까운 곳보다 먼 데 있는 것이 더 잘 보이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 나라로 더 가까이 부르신다는 감격을 맛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막연히 50이라는 숫자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대가 되고 30대가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부터 점점 내 마음 속에 오십이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다. 작은 일에도 쉽게 삐치고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이 속좁은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 실망할 때 나자신을 위로하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사십 대라서 그럴거야. 이제 오십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오십이 되면 분명히 지금의 치졸한 생각이나 유치한 자아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차원높은 삶을 살 수 있을 것같았다. 오십이 되기만 하면 나는 뿌리가 든든히 내리고 큰 가지를 뻗어서 푸른 잎들로 무성하고 열매도 많이 맺히리라. 그러면 새들도 날아와 노래할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그늘에 쉬어갈 수 있으리라. 가끔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성숙한 시기는 언제일까?”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더욱 오십이란 나이가 내게 소망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설레임으로 오십이 되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날은 책을 펼쳤는데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는 매일반이었다. 분명히 어제 읽다가 둔 책인데 하룻밤 사이에 시력이 갑자기 나빠진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책을 조금 멀리 띄우니 그제야 글자가 또렷하게 망막에 들어와 앉았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어머,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드디어 원시(遠視)가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가까웠다는 사인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뛰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 가슴을 쳤던 것이다.

    그러나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날 오후에 치과에 갔는데 잇몸 속의 이뿌리가 많이 삭아내려서 이대로 가다가는 이가 다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순간 오전에 맛보았던 나이가 든다는 기쁨, 좀더 성숙해진 것같은 푸근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서글픈 마음, 이제 다시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심리적 박탈감에 마음이 캄캄해졌다.

    나의 오십대의 성적표는 과연 내가 사십대에 기대한 수준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40대에 비해 넓어지고 풍성해진 것이 많다. 내려놓은 것도 많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것이 많고 아니 어쩌면 더 아성(牙城)이 견고해진 것들도 많다. 나는 오십대가 되기만 하면 저절로 풍성해지고 폭넓은 인생이 되는 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때로 나이가 드는 것이 즐겁고 때로 나이가 드는 것이 서글프지만 아직도 나의 세계는 좁고 한심하기만 하다. 예전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알고 있고 저것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50을 넘고보니 내가 예전에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던지 부끄러워진다. 인생 학교의 5학년 2반 학생으로서 내가 아는 것은 이제 단 두 가지 뿐이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여전히 사랑하실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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