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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뒤돌아본다면

    며칠 전 금요일의 일이다. 그날은 엄마를 모시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집에 누가 온다고 해서 예린이에게 할머니를 모시고 가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잠시 뒤에 기윤이가 내게 “엄마 안가요?” 하고 물었다. “어머나, 너 누나랑 같이 안갔니?” 아이는 무슨 영문인 줄 몰라 나를 쳐다본다. 급히 밖을 내다보니 벌써 차는 가고 없다. 이런 세상에. 깜박 잊고 예린이에게 기윤이를 데리고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구나. 금요일에는 엄마를 물리치료실에 모시고 가는 길에 기윤이를 익스프레스 버스 정류장에 내려다주는데 그날은 내가 가지 않고 예린이가 가면서 일이 꼬인 것이다. “너 그냥 오늘은 익스프레스 버스 말고 우리 집 앞에서 타고 가면 안되겠니?” 아이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네 버스를 타면 영락없이 지각이라는 뜻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다. 오기로 한 사람도 약속시간보다 늦어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모른다. 그녀도 다른 약속이 있기 때문에 곧 가야 한다고 했다. 만약 그녀가 우리 집에 와서 본다면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무척 당황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무작정 그녀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아이에게 차를 타라고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익스프레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내가 예린이에게 동생을 데리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주라는 말 한 마디만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기윤이에게 오늘은 엄마 대신 누나와 함께 가라는 말 한 마디만 했어도 나는 지금쯤 편안하게 집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아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해서 실망한다. 때로 남편이나 아내에게 때로 부모님이나 자녀에게 그리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하는 실망보다 더 자신을 실망시키는 것이 있을까. 때로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자신이 실망스러울 때면 이만큼 나이가 먹었으면서도 아직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혼자서는 멀쩡히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죽음 앞에 서서 지금의 이 순간을 뒤돌아본다면 과연 어떨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오늘의 이 일을 떠올린다면 과연 이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질까?’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오히려 쿡쿡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그 언젠가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 하나 하나를 뒤돌아볼 것이다. 그때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하게 될까? 우리 모두는 너나 없이 너무나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 일은 일 주일만 지나도 아니 어쩌면 하루만 지나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지구가 무너지는 일인 것처럼 엄청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이 그러하고 대부분의 인간 관계의 갈등이 그러하다. 그는 어쩌면 그날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그녀는 어쩌면 그날 아이들과 하루종일 씨름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그날따라 무뚝뚝하고 혼자 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그녀도 그날따라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자신을 몰라주는 서로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비난하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불평과 원망의 작은 불씨는 조용히 속으로 꺼뜨려야 되는데 이것을 오히려 훅하고 크게 불어서 큰 불로 번지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 마음이 넓어지지만 “어쩌면 그럴 수가 있지?” 하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면 모두가 이리 저리 난도질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러기 때문에 누군가 우리를 오해하고 누군가 우리를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 일은 하나님 앞에서는 사실 사소한 일일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는 비난 대신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길게 숨을 들이 쉬자. 이 세상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내가 불완전하듯이 그들도 불완전한 것뿐이다.

    그 대신 작은 일에 감사와 기쁨을 찾자.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눈이 있어서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손이 있어 음식을 짓고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것, 발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갈 수 있는 것, 비록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자. 만나는 사람에게 밝은 미소를 보내자. 우리를 만나는 사람마다 예전보다 더 행복하고 가치있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자. 그래서 우리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자. 그러면 천사도 기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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