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 사랑

    KTX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응, 주영? 아빠야. 응? 초코파이 사오라고? 응? 찰떡파이 사오라고?” 무엇을 사오라고 하는지 거듭 확인하는 그에게서 아빠라는 것을 느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건 얼마나 큰 희열일까. “아빠 빨리 갈거야. 10시 반 쯤? 응 그래 기다리고 있어. 흐흐흐…” 남자는 뭐가 좋은지 혼자서 웃고 있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양복케이스를 들고 있는 걸로 봐서 그는 잠시 출장을 온 모양이다. 이제 두 시간 반만 지나면 그는 아이가 사오라는 과자를 쥐고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겠지.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예닐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앞 니 하나 빠진 채 깔깔거리는 모습이 저만치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저 남자가 완벽할 리가 없고 그의 아내 역시 완벽하지 않겠지만 서로 사랑하고 한평생 함께 하겠다고 고백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고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고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고 아빠를 기다리고 아빠는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가고…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은 커다란 다이아몬드나 엄청난 금액의 로또 당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상의 소소함에 있을 게다. 늘 피어있던 담쟁이 잎이 어느날 생명의 신비로 다가오고 겨울 햇살에 문득 눈물이 핑돌고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그것이 행복이고 사랑일 게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시간의 연속일 때가 많다. 나를 이해시키기가 그렇게 어렵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려운 곳, “아, 그렇구나”보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짜증과 반목이 더 쉽게 일어나는 곳, 나를 변화시키려는 상대방의 저의에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내 뜻대로 변화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어쩌면 저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곳, 나는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기 원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지 않는 한 절대로 인격적인 대우를 해줄 수 없다고 마음의 칼날을 드세우는 곳, 끝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와 잔소리 속에 따뜻함은 따분함이 되고, 날마다 그렇고 그런 일상의 연속 속에 서로의 존재가 행복과 감사가 아닌 부담과 거북함이 되는 곳, 그래서 가정은 그렇게 몸살을 앓고 있는 가보다.

    결혼 생활을 어렵게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코파이만으로도 행복했던 아이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초코파이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아이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고 핸드폰을 사주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고 점퍼를 사주면 유명 브랜드를 사달라고 조른다.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13평 전세도 괜찮다던 아내 역시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원하고 더 좋은 차를 원한다. 남편 역시 결혼만 해주면 반찬은 못해도 괜찮고 빨래도 대신 해주겠다더니 남는 건 요구 사항뿐이다. 반찬은 요리사처럼 하고 와이셔츠는 세탁방 아저씨같이 다리고 아이들은 앞집 아줌마같이 키우고 게다가 뒷집 아줌마같이 돈도 벌어오란다. 심지어 어떤 남편은 자신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아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을 왕처럼 떠받들라며 억지를 쓴다. 태어날 때만 해도 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던 부모 역시 아이에게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받아야 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기는 매한가지다. 이해와 배려는 사라지고 요구와 비난만 쌓여가면 가족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가 싶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등을 돌리는 것이다.

    결혼은 수많은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그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에 그에게 더 큰 미래를 열어보여 주고 싶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고통을 감수한다.

    나에게 맞추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