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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들의 행진

    김중현씨가 쓴 글을 읽었다. 그녀는 자신을 전(前) 농구선수였고 최연소 코치로 승승장구하던 박승일씨의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다. 한국을 떠난 지가 20년이 넘었고 또 스포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는 박승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그녀가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박승일과 김중현. 두 사람은 1993년에 처음 만났고 서로 마음이 끌렸지만 여러 가지 오해가 쌓이면서 박승일씨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다가 2002년 TV 방송을 통해서 그녀는 박승일씨가 근육이 점점 무기력해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승일씨는 이혼을 했고 그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구 마우스로 의사소통을 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눈으로 글자판을 짚어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얼굴 근육이 점점 굳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의 기분을 알 수 있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안아줄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데 괜찮으냐고. 저는 그 사람들에게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를 안아줄 수도 없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듯, 우리는 서로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숨쉬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가져야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야 행복합니다. 저는 가장 소중한 사랑을 택했고 지금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여자가 그것도 결혼한 사이도 아니면서 불치(不治)의 병을 앓고 있는 남자의 시중이나 들면서 자신의 24시간을 몽땅 쏟아버리고 있다면 대부분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어쩌다가 저런 신세가 되었냐고 동정어린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게릭병과 싸우고 있는 박승일씨와 함께 병상에서 찍은 사진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밝고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사랑. 그래 사랑을 택한 사람은 저렇게 행복하구나. 명예를 택한 사람들은 더 높아지기 위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돈을 택한 사람들은 더 가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지만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미소가 있구나. 세상은 그녀를 바보라고 하지만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는 감출 수 없는 행복과 만족이 있구나.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서로에게 실망하며 등을 돌리고 있을까.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일지라도 결혼한 이후에는 서로가 주기보다 받기를 원한다. 나를 이해해주기를 원하고 내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때부터 조금씩 불만이 쌓인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주어도 모자라는 것같아서 날마다 사랑을 더 주고 싶지만,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은 날마다 사랑이 모자라는 것같아서 더 달라고 불평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에너지가 날마다 더 커지지만,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에너지가 작아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면역성이 날마다 커져서 어지간한 어려움이 와도 극복하고 지나가지만,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은 사랑의 면역성이 바닥이기 때문에 작은 문제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인간관계에 큰 병을 앓게 된다. 인간 최고의 행복은 사랑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데서 온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사랑하기보다 사랑받으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12월이다. 살아온 1년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사랑으로 행한 것만을 기억하신다. 우리는 올 한 해 어떤 사랑으로 살아왔을까. 가족에게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베풀었을까. 혹시 날마다 사랑을 요구하며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 악착같이 모아도 모자라는 세상에 살면서 나누어주면 결국 빈털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만큼 바보가 있을까.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조차도 사랑하신 그분만큼 바보가 또 있을까. 그러나 그분 때문에 우리 역시 무엇보다 사랑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결국 스스로 똑똑한 체하는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의 대열에 설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바보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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