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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대부분의 어린 자녀들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대한다. 산타클로스가 바로 부모님이란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몇 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아무튼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부푼 꿈에 들떠있다. 만약 우리가 아이들에게 “너 이번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로부터 무엇을 받고 싶니?”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말할 것이다. 아이들 중에 “아니예요, 저는 선물보다 산타클로스를 원해요”라고 말하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 아이들은 산타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즐거워하기보다는 산타가 크리스마스 장식 나무 아래 더 좋은 선물을 놓고 가기를 바란다.

    우리네 인생 대부분은 어린 자녀들이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기대하듯 그렇게 살아간다.
    유년기와 사춘기를 너머 청년이 되어 결혼할 대상을 찾을 때에도 자신에게 더 나은 선물을 줄 사람을 찾는다. 결혼 후 배우자가 자신이 기대했던 더 나은 선물 대신 실망을 안겨주면 또 다른 더 나은 선물을 위한 출구를 찾는다. 공부를 하는 것도,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도, 많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 더 나은 선물을 기대하는 욕구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원한다.

    부부싸움을 벌이는 이유도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달라는 탄식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더 나은 선물, 더 나은 삶을 기대했는데 왜 배우자가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보다 더 나은 선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돈을 번다. 아내는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하고, 더 나은 자녀양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즐길수 있는 취미와 문화활동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며 교양있는 삶을 누린다. 그런데 남편과 자녀와 친밀함을 누리는 데는 너무도 미숙해서 늘 갈등과 긴장 관계에 있다. 그녀의 뇌리 속엔 항상 “ 더 나은 삶”에 초점이 있을 뿐이다.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열심히 헌신하고 기도하는 내용도 항상 더 나은 복, 더 나은 자녀의 모습, 더 윤택한 삶이 기도제목 리스트를 꽉 메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 이른바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아버지가 엄연히 살아계시는데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요구하여 챙겨 나간 아들 이야기다. 자신의 몫을 챙긴 후 그는 자기가 기대하던 더 나은 삶을 맘껏 누렸지만 결국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알거지가 된 채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탕자는 아버지께 자신을 일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끝까지 아버지의 선물을 원했을 뿐 아버지와 함께 누리는 친밀함에는 관심조차 없없다. 레리 클렙이란 미국의 상담학자는 이를 두고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라는 표현을 했다.

    어린 자녀가 부모대신 선물을 원하고,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대신 더 나은 선물에 초점을 두며 산다면 가족의 존재 자체를 모독하는 일이 아닐까?

    어그스틴은 청년시절 그야말로 방탕한 삶을 살았다. 더 나은 선물,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다 시도했다. 그에게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영혼의 허무함이 있었고, 그 허무함은 그가 절제할 수 없는 성적 쾌락으로 그를 유혹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방황하는 인생에서 돌아선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더 좋은 소망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성적 쾌락보다 더 큰 기쁨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 말년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한 도시에는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살고, 다른 도시는 거룩한 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산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평안의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자기가 선택한 평안을 누리며 산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삶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다. 원만한 관계, 건강,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재력, 보람된 직업등을 갖추면 인생의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기본원칙을 따른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며 한동안 평안을 즐길수 있다. 그러나 그런 평안으로는 결코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요14:27)라고 말씀하셨다.
    이 평안은 사람이 추구하는 더 좋은 선물, 더 나은 삶의 축복에 의존하지 않는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
    선물일까? 사람일까? 더 나은 삶일까? 삶의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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