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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운탕 한 그릇

    사랑은 몫을 남겨놓는 것입니다

    그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했다. 데이트 시절, 남편이 외아들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젊어서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남편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어른을 모시고 사는 것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한 그녀였기에 부엌일은 모든 것이 서툴렀다. 때로는 칼에 베이고 때로는 불에 데이면서 하루하루 손맛을 익혀가던 어느날 시이모님이 오셨다. 그녀는 얼른 가게로 가서 생선도 사고 두부와 파도 사서 정성껏 매운탕을 끓여서 상에 들고 들어갔다. 그러나 상을 올린 뒤에도 부엌일은 계속 있게 마련이어서 어질러진 부엌을 대충 치우고 식사 뒤에 드릴 과일도 준비해 둔 다음 방에 들어가보니 이미 두 분은 매운탕을 맛있게 드시고 난 뒤였다.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이 자신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고 예상하고 방에 들어간 그녀는 뼈만 남아있는 매운탕 냄비를 보자 너무도 서러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친정에서 귀하게 자란 딸이었다. 친정엄마는 식사시간이 되면 꼭 자신을 부르셨고 만약 자신이 식사시간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꼭 자신의 몫을 남겨놓으셨다. 그런데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이 집에서 더 이상 자기 몫은 없다. 아무도 자기의 몫을 챙겨주지 않고 어른들은 자신을 부르지도 않고 뼈만 앙상하게 남겨놓은 것이다. 순간 자신은 이집에서 아무런 자리도 몫도 없고 다만 끝없이 일만 하는 부엌데기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어른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통곡이 터져나오면서 아무리 울음을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가 않았다. 남편도 야속했다. 자신과 결혼만 해주면 왕비처럼 모시고 살겠다고 호언장담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데이트 시절에는 그렇게 자상하고 부드럽던 남자가 결혼하고 난 뒤에는 딴 사람이 되었다. 시어머니 눈치가 보여서인지 이불도 개어주지 않았고 설거지도 도와주지 않았다. 시누이도 용돈이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지 다른 때는 별로 친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이 낯선 이 집에 오직 남편 한 사람 보고 결혼을 했는데 남편조차 자기 편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서러운 마음이 커졌다. 그녀가 방바닥에 퍼질고 앉아서 큰소리로 울자 당황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달래셨고 시이모님은 부랴부랴 부엌에 나가셔서 남은 재료로 매운탕을 새로 끓이셔서 상을 보아오셨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마음도 있어서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이 보는 가운데 매운탕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자리가 필요하고 자기의 몫이 필요하다. 사랑은 그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 사람의 몫을 남겨놓는 것이다. 요즘에야 전기 밥솥이 있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남편이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면 밥이 식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밥을 그릇에 퍼서 수건에 꽁꽁 싼 다음 이불장 속의 두툼한 솜이불 사이에 넣어두거나 아랫목에 묻어 놓으셨다. 남편이 오지 않으면 남편의 몫을 챙기는 것이 아내의 사랑이고 아이가 오지 않으면 아이의 몫을 챙기는 것이 엄마의 사랑이다. 또한 회사에서 회식을 하러 갔을 때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다음에는 함께 와야지 하는 것이 남편의 사랑이요 아빠의 사랑이다.

    결혼한 여자들은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우리의 속담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자주 경험되어지는 일인지 다 공감할 것이다.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을 때 아내는 고기를 구워서 남편과 아이들 앞으로 갖다놓는다고 고기 한 점 자기 입에 넣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제 남편과 아이들이 얼추 먹은 것같아 보여서 자신의 것을 구우려고 하면 남편이 말한다. “이제 고만 구워. 배불러.” 그럴 때 대부분의 아내들은 “아니, 나 아직 안 먹었어. 내것을 구워야겠어.”라고 말하지 못한다. 다만 속으로만 나는 먹지 않았다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궁시렁거릴 뿐이다. 만약 그때 남편이 “당신 수고했어. 이제 내가 구울테니 당신 먹어.”라고 한다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아내는 행복할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 무슨 큰 일을 해주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작은 배려에 감격한다. 그런데 남편들은 아내의 그 마음을 모른다. 자신이 배고프면 고기를 구우라 하고 자신이 배부르면 고기를 그만 구우라고 한다면 아내는 자신의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서러운 것이다.

    남편들은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러면 미리 말하면 될 거 아냐?”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들은 말을 해서 하는 것은 엎드려서 절받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에 감동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나를 생각해 주고 나를 배려해 주기를 기대한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남자와 말하지 않아도 해주기를 바라는 여자가 사는 집, 그래서 그곳은 날마다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가 보다.

    음식 뿐만이 아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아내를 위하여 에너지의 10%는 남겨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귀찮아, 나 피곤해. 건드리지 마.” 혼자 밥먹고 혼자 신문보고 혼자 텔레비전 보다가 혼자 소파든 침대든 아무데나 쓰러져 자는 남편은 아내의 마음과 아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남편이다. 남편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내를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느냐고 오늘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느냐고 아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것이 5분이 되든 10분이 되든 남편이 아내만을 위한 시간을 낼 때 아내는 남편 속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고 자신이 이 집에서 꼭 있어야 할 중요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된다.

    내 자리가 없고 내 몫이 없을 때 사람의 마음은 떠나게 된다. 부부가 등을 돌리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남이 되는 것이다. 남편이 있어도 남편이 없는 것처럼 살고 아내가 있어도 아내가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것보다 더 상대방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사랑은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의 몫을 남겨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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