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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다스리며

    이번 여름에 대학에서 썸머 스쿨을 하는 큰 아이의 도시락을 싸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그 다음 날부터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으니 16년도 넘게 도시락을 쌌구나. 그런데 우리 막내 예은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을 싼다면 앞으로 11년은 더 싸야겠지. 그렇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최소한 27년은 도시락을 싸면서 보내는구나.’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세상에, 무려 27년 동안이나 도시락을 싸야 한다니 너무한 것 같았다. 아이들도 많고 터울도 많이 지다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도시락을 싸야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하루는 빵 하루는 밥으로 메뉴를 바꿔가면서 네 개의 도시락을 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거니와 양파 싫어하는 아이는 양파 빼고 참치 싫어하는 아이는 참치 빼고 하는 식으로 도시락을 싸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순간 한국의 급식 문화가 부러웠다. 물론 단체 급식을 하다가 집단 식중독이 일어났다든지 학생들이 집단 복통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했다든지 하는 기사를 대할 때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그래, 맞아.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정성껏 싸주는 도시락이 제일이야.’ 생각하면서도 부러운 것은 여전히 부러운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내가 뉴질랜드에 첫 발을 디뎠을 때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 곳에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난 다만 하루 하루를 살았을 뿐이고 단지 하루 하루 네 명의 아이들 도시락을 쌌을 뿐이다. 다만 그 세월을 모아보니 16년이 된 것이지 앞으로 16년 동안이나 어떻게 도시락을 싸느냐고 지레 힘들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을 잘못 다스리게 되자 자기 연민의 마음이 불쑥 찾아든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했다. 뉴질랜드에 와서 산 16년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 매일 도시락을 쌀 수 있도록 내게 건강을 주신 하나님, 네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를 드려야 했건만 내 마음이 엉뚱한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는 순간 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감사 대신 불평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다가도 어느 순간 엉뚱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갑자기 자신의 삶이 너무도 부족하고 초라해 보인다. 특히 어느 분야에서 전문적인 위치에 있거나 성공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나 싶은 자조적인 마음이 들고,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참 고맙게 여겨지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5불 10불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삶이 구질구질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나와 동갑이라고 하는데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갑자기 자신의 얼굴이 부끄러워지면서 세월이 자신에게만 힘들게 간 것이 아닐까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 역시 우리 막내를 임신하면서부터 얼굴에 기미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화장으로도 숨길 수 없게 된 얼굴을 대할 때, 특히 오랜만에 나를 만난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면 서른 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라 더욱 예뻐하면서도 공연히 막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참으로 부끄러운 엄마로서의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이것은 이래서 못하고 저것은 저래서 못한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초라한 자신을 볼 때의 그 구겨진 느낌.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감사 대신 불평할 수밖에 없다.

    사는 것이 힘들어질 때 우리는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탄식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생에 어차피 기쁨만큼 슬픔이 있고 희망만큼 절망이 있다면 마음을 다스리고 볼 일이다. 올 해 만큼은 정말 감사하며 그리고 나누어 주며 살기로 결심하지만 우리들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우리는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리며 살자. 하나님께서도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잠4:23) 끝도 없는 절망으로 지레 포기하기 보다 하루 하루 한 가지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즐겁게 살자. 앞으로 11년이나 더 도시락을 싸야한다고 지레 불평하지 말고 그저 하루 하루 즐거운 마음으로 싸면 그만인 것이다.

    올해는 가끔 마더 테레사가 쓴 “한 번에 한 사람씩”이라는 시를 떠올려 가며 살자.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그래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 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다니는 모든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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