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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하게 하소서

    그녀는 한센병 환자였다.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리던 이 병은 지금이야 치료약이 좋아져서 조기에 치료하면 신체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예전에는 약도 귀해서 얼굴과 손발이 흉하게 일그러진 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더 무서운 그런 병이었다.
    그녀가 병원에서 한센병 진단을 받고나온 날부터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자신의 베개를 챙겨서 마루에 나가 잠을 잤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아들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기를 꺼렸다. 동네 사람들도 그녀가 지나가면 뒤에서 수군거렸다. 가슴이 무너지는 막막함 속에 잠못드는 밤들이 계속되면서 그녀는 마침내 마음을 다져 먹었다. 자기 한 몸이 나가서 모든 가족들이 자유로와진다면 그렇게 해야할 것같았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그저 자신의 운명을 탓할 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늦둥이 막내 아들이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엄마부터 찾고 밤이 되면 엄마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드는 저 어린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그녀는 이를 앙다물었다. 그녀는 남편과 큰 아이 둘에게 오늘 밤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뒤돌아서서 눈물만 떨구었을 뿐 아무도 나가지 말고 그냥 우리와 함께 살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에게 서운한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도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이 계속 이 집에 있다가는 남편도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자식들의 앞길도 막힐 뿐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 전부가 동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녀는 그날밤 막내를 재우며 차분하게 말했다. “엄마가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어서 올게.”막내는 막 잠이 드려고 하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안돼. 엄마. 가지 마.” 어린 것도 요즘 집안의 분위기나 동네 아이들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뭔가 집히는 게 있는 모양이다. ”아니,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철이 장난감 많이 사가지고 온다고…“”안돼. 나 장난감 필요없어. 그딴 거 없어도 돼. 엄마 가지 마. 절대 가면 안돼.”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나. 어쩌자고 나의 운명은 내가 낳은 자식마저 내 손으로 키울 수 없게 만든단 말인가. ”그래, 알았어. 엄마가 장난감 많이 사오면 철이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걱정말고 어여 자.“”엄마, 정말이지. 정말 안가는 거지?”“그럼, 정말이고 말고. 걱정말고 자.”아이는 자기 새끼 순가락을 엄마 손가락에 걸어서 수십 번 다짐을 받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부리나케 달려나가더니 실꾸러미를 가져왔다. ”엄마 손하고 내 손하고 묶어.“”엄마 안간다니까.””얼른 묶으라니까.”결국 그녀는 자신의 손과 아이의 손가락을 실로 묶었다. 아이는 그제야 다소 안심이 되는지 엄마 손을 꼭 쥐고서 잠이 들었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지 않겠다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자신의 손과 아이의 손가락을 묶어놓은 실을 끊어버릴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차마 실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데 벌써 새벽이 되었는지 동네 장닭이 길게 울음을 울었다. 그녀는 자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고는 가위로 실을 끊었다. 그녀의 심장에서 핏줄이 잘라져 나가는 듯 가슴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서 일어나 저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그녀는 집을 나섰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차마 옮겨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놓고 있으려니 뒤에서 자기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엄마의 빈자리가 서늘하게 느껴진 아이는 잠에서 깨어 집에서 엄마를 찾다가 이제 마당에 나와서 엄마를 찾는 모양이다. 아이에게 들켜서는 안된다.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아이의 목소리가 그녀를 뒤쫓아 온다. ”엄마, 가지마. 엄마, 장난감 사달라고 인할게. 이제부터 엄마 말 잘 들을게. 엄마 가지마.”그녀는 귀를 막고 달렸다.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이것이 엄마로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렇게 도망치듯 아이 곁을 떠나는 것만이 엄마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을…

    수많은 시간들이 흐르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정착한 곳, 소. 록. 도.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 여자,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병이 심한 사람, 비교적 건강한 사람, 그래도 가족이 있어 일 년에 몇 차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 아예 찾아오는 사람 없이 외로운 사람…정말 하나같이 가슴에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천국( 賤國)이라 부르는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믿고 천국( 天國)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곳에서는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기를, 그곳에서는 천대받지도, 버림받지도 않고 살아가기를, 그곳에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또한 사회는 그들을 잊었고 가족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들은 자신을 버린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한다. 그들이 건강하기를, 그들이 평안하기를, 그들이 행복하기를 빌고 또 빈다. 소록도에는 밤 사이에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코로 호흡하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내 곁에 이웃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들의 감사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코가 문들어지고 손발이 일그러진 그들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열 손가락 멀쩡한 우리는 얼마나 더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올 한 해 내게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을 먹는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게 하심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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